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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10월의 에디토리얼
<이름을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gwilee
  • 조회1296회
  • 2023-09-27 21:21:50

안녕하세요. 4년 만에 다시 에디토리얼로 인사드립니다. 돌아온 에디토리얼이 반가우실 분들보다 낯설고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을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보고 들었던 것들을 간단히 소개해 드렸던 것이 바로 2017년에 시작된 귀리의 에디토리얼이랍니다. 캐리어와 카메라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그때의 저희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 배낭여행자라고 착각하셨을지도 몰라요. 힘들지만 즐겁게 촬영했던 에디토리얼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꽤 많은 분들이 귀리를 찾아주시고 있더라고요. 예전엔 마케팅이랄 것도 없었으니, 예전의 귀리를 좋아해 주시고 아껴주셨던 고객님들께서는 에디토리얼로 저희를 알게 되신 분들이 대부분이셨죠. 지금은 회사가 커짐에 따라 모든 일들이 분 단위로 돌아가고 있을 만큼 체계적으로 바뀌어서 비효율이라면 비효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언젠가는 에디토리얼로 다시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귀리의 시작이 에디토리얼이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이 저희에게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에디토리얼은 촬영이나 패션 이야기를 떠나 저희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면밀히 탐구하고 얘기를 나누는 형식이 될 예정이에요. 7년 전의 에디토리얼이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는 여행자의 이야기였다면, 새로운 에디토리얼은 적극적인 호기심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탐험가의 이야기에 가깝겠네요. 많은 분들이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토록 아껴주셨던 이유가 그 때의 즐겁고 행복한 감정들이 말로 하지 않아도 사진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라면, 저희들의 새로운 이야기 또한 좋아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가을만큼 좋은 날씨가 드물어서 이맘때쯤이면 어디라도 돌아다녀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깁니다. 저희 집 근처에는 아차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등산 초심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높이라 요즘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면 종종 약속 장소로 정하고는 해요. 얼마 전에도 가벼운 동네 산책을 하다 산책길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꽃과 풀들을 단 한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들꽃이나 들풀로 퉁치기에는 생김새가 너무 제각각이라는 사실도요.  


10월의 에디토리얼에서는 이름을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살펴보려고 해요. 바로 지천에 널려있지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들꽃들 처럼요. 





이곳은 의정부에 있는 조용한 타운 하우스예요. 저희끼리 ‘들꽃 세미나’라고 이름 붙인 10월의 에디토리얼을 준비하기 위해 방문했답니다. 내부에는 공장에서 마구 찍어낸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서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많았어요. 자취 10년 차인 저는 이런 가구들을 집에 턱 턱 들이려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0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서울이 고향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어째서 늘 돌아갈 곳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언젠가 1인 가구에 대한 얘기도 해보고 싶어요.





각자 궁금한 들꽃을 고르고 어떤 꽃인지 공부하는 모습. 귀리 식구들이 한데 모여 일 얘기가 아니라 들꽃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해요. 평소였으면 사무실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을 텐데 말이죠. 일 얘기가 아니라 들꽃 얘기를 하니 싸울 일 없이 평화로워요. 부끄럽지만 저희는 사무실에서 자주 다퉈요. 귀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하난데 생각하는 방식이 들꽃 가짓수만큼이나 제각각이라 그런 거겠죠. 에디토리얼을 핑계로 잠시 일 생각에서 벗어나 이렇게 잔잔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니 그 동안 귀리를 가꾸며 생겼던 다툼이나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다툼이 많은 곳에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들꽃 얘기를 나눠야 한다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요?





한 사물을 이렇게나 오래 들여다본 게 얼마 만인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던 풀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니니 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냥 붙여진 이름이 하나도 없고 각각의 유래와 사연이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웬만해선 식용 방법까지 있더라니까요. 이제는 우리가 공부한 풀들이 수 많은 들꽃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보이겠죠. 군중 속에 있어도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아는 사람은 금방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요.





아래는 저희가 공부한 들꽃들이에요. 고른 풀도 이유도 제각각이지요. 그림에서 각자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아 재밌어요. 귀리를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간접적으로 떠올려 보실 수 있겠네요.




박귀리 [개망초]

지천에 널려있는 계란 프라이 꽃의 이름을 드디어 알게 됐네요. 개망초는 꽃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흐드러지게 피어도 안개꽃처럼 단아해요. 일제 강점기 때 철도에 씨가 붙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밭농사를 다 망치는 바람에 ‘나라를 망치는 잡초’라는 경멸의 뜻을 담아 개망초라고 부르게 됐대요. 산과 들까지 나가지 않아도 길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개망초는,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잡초가 되어버렸지만 ‘화해’라는 다정한 꽃말을 가진 풀이랍니다.


이경하 [병아리풀]

꽃의 이름은 언어 혹은 의미 측면으로 각각 구분되어 정해진대요. ‘병아리’라는 단어를 포함한 꽃들은 초형이나 키가 작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랍니다. 그래서인지 병아리풀에 대해 찾아보면 크기가 정말 작다는 말이 꼭 있더라고요. 병아리풀은 크기가 매우 작아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 알록달록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분홍색의 윗꽃잎 아래에 노란색 꽃잎이 한 장 숨어 있고, 이윽고 그 자리에 통통한 연두색 열매를 맺습니다. 병아리풀의 꽃말이 ‘겸양’이라는데, 왜인지 알 것도 같아요. 참, 언뜻 보면 ‘개여뀌’라는 들꽃과 헷갈릴 수 있는데, 그럴 땐 꽃 아래에 열매가 같이 달려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민경서 [산국]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 동네를 걷다 보면 꿀처럼 달고 짙은 향이 코를 찔러요. 딱딱한 돌 틈 사이에도 피어 있는 작은 노란 꽃, 바로 산국이었네요. 겨우 손톱만 한 꽃 덩이가 얼마나 향이 진한지 산국의 향기에 취해 나뭇잎이 물이 든다는 귀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형을 가리지 않고 길가와 산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습성 덕분에 얼음이 얼 때에도 볼 수 있는 고마운 꽃이랍니다. 꽃과 가지를 말려 베게 속에 넣어두면 지끈지끈한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알아두세요.


권하연 [토끼풀]

저희 집 강아지 내리와 산책할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있는 토끼풀입니다네잎클로버를 발견하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어 어렸을  학교 운동장 화단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흔히 풀꽃이라고 부르고 따다가 꼬아서 풀꽃반지로 만드는 꽃이 바로 토끼풀이라고 합니다산책하기 좋은 선선한  행운과 평화를 선사해  토끼풀을 한번 찾아보세요.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작은 디테일들인 것 같아요. 조만간 산책이나 산행을 가실 일이 있다면 일행에게 위의 들꽃 몇 가지를 아는 척해보세요. 식용 방법이나 이름의 유래를 같이 알려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Credit

기획 / 박귀리 김준혁 민경서 이경하 권하연

사진,영상 / 김준혁 이경하

글 / 박귀리